한국의 발전 경로에서 동남아가 배워야 할 점
한국의 발전 경로에서 동남아가 배워야 할 점 -피에트로 마시나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https://substack.com/home/post/p-207537620 image.png "동남아가 한국식 발전 모델을 모방할 수 없는 이유" 한국은 이제 평범한 국가를 넘어 하나의 '성공 모델'이 됐다. 빈곤국이 농업과 원자재, 저비용 제조업 의존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때마다 한국 사례를 소환한다. 1960년대 초 한국은 식민 지배와 분단, 참혹한 전쟁의 폐허 속에 있었다. 하지만 불과 한 세대 만에 철강, 선박, 자동차, 전자, 반도체 분야 글로벌 강국으로 거듭났다. 외산 기술로 시작한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한국만의 성공 방정식이 있다. 교육에 투자하고 제조업을 육성하며, 수출로 산업 고도화를 이루는 것이다. 한국은 유능한 정부와 기업가 정신, 국가적 규율이 있다면 후발주자도 불리한 출발점을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끊임없이 한국과 비교 대상이 됐다.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식민지에서 독립해 발전을 시작했다. 산업 단지를 조성하고 교육을 확대하며 제조업체를 유치했다. 베트남 역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제조업 기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말레이시아는 전자 산업을 일궜지만, 수익성 높은 기술과 시장을 통제하는 자국 기업이 부족했다. 태국은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 거점이 됐으나 현대자동차 같은 자국 기업을 배출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는 상당한 산업 역량을 갖췄음에도 내수 시장과 풍부한 자원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연결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필리핀 역시 전자 제품 생산과 서비스업에 진출했지만 구조적 전환은 요원했다. 베트남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엄청난 규모로 수출한다. 그러나 제품 정교함에 비해 베트남 기업이 실제 통제하는 기술력과 기업 역량은 뒤처진다. 핵심은 하나다. 동남아시아 역시 수출 경로를 따라 글로벌 가치 사슬에 합류했고, 수백만 노동자를 교육했으며 인프라를 구축하고 막대한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다. 아세안은 2024년 2260억 달러(약 334조 8325억원)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허브로 자리 잡았다(UN 무역개발회의). 그렇다면 왜 한국은 수출 산업화를 통해 국가 주도의 강력한 산업 역량을 창출했는데, 동남아시아는 성과가 미미했을까? 흔히 국가 역량의 차이를 꼽는다. 한국 관료들은 투자를 조정하고 신용을 통제하며 성과를 강제했다. 반면 동남아시아의 산업 정책은 후원주의, 부패,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파편화됐다. 일리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험을 단순한 제도적 복제물로 보는 것은 오해다. 한국의 산업화는 급진적 토지 개혁, 냉전이라는 지정학적 배경, 국가의 금융 통제, 외국인 소유 제한, 내수 시장 보호, 재벌 육성, 노동 탄압이라는 이례적인 국내외 조건이 결합한 결과다. 동남아시아는 다른 제도적 환경에서 뒤늦게 글로벌 제조업에 진입했다. 정부는 전체 산업 생태계를 통제할 기업을 키우기보다 다국적 기업의 생산 공정 일부를 유치하는 데 집중했다. 두 경로 모두 공장과 수출을 만들었지만, 기술과 소유권, 전략적 권력을 배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따라서 한국의 경험은 청사진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모델에 무엇이 결여됐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핵심은 글로벌 생산 참여를 국내 기술 및 기업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힘이다. ◇한국의 기적이 실제로 필요로 했던 것 한국의 변화는 3공화국 정부의 산업 정책 이전에 시작된 '토지 개혁'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토지 소유 집중으로 소작농이 대다수였던 한국은 해방 후 개혁을 통해 경작자에게 토지를 분배했다. 이는 지주 계급을 약화하고 자산을 분배해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평등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 덕분에 기존 지주 세력이 국가의 산업 자원 재배분을 방해할 힘을 잃었다. 이는 산업화의 사소한 서곡이 아니었다. 국가 주도 성장 체제가 안착할 정치적 토양을 다지는 일이었다. 반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대다수 국가는 탈식민지화 이후에도 토지 소유권이 엘리트 권력과 결합해 살아남았다. 경제 현대화는 기존 권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진행됐다. 지정학적 위치도 결정적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미국은 군사 보호와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 발전은 단순한 경제 목표를 넘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생존 과제였다. 미국의 원조는 인프라 재건을 도왔고, 베트남 전쟁은 산업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줬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로 들어온 자금과 기술 역시 산업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의 도약은 결코 자율적인 성취가 아니었다. 외국의 원조, 차관, 기계, 기술 라이선스에 광범위하게 의존했다. 다만 한국은 외부 자원을 국가가 통제하는 기업 육성에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직접적인 외국인 소유를 제한하고 차관과 기술 라이선스를 선호해 국내 기업이 경영 통제권을 유지하도록 했다. 금융은 핵심 메커니즘이었다. 1961년 이후 정부는 은행 시스템을 통제하고 산업 우선순위에 따라 신용을 할당했다. 대출, 외화, 수입 허가, 공공 계약은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권이었다. 산업 정책은 단순한 지원책이 아니었다. 희소 자원을 국가가 직접 분배하는 전략이었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비교 우위가 없던 분야에 기업들이 뛰어든 것도 정부가 위험의 일부를 흡수했기에 가능했다. 국영 철강업체 포항제철(포스코)은 이런 야망의 상징이다. 당시 한국은 철광석도, 기술도 없었지만 철강을 미래 산업의 인프라로 정의하고 밀어붙였다. 재벌은 이 전략을 실행하는 민간 도구였다. 삼성, 현대, LG 등은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에서 저절로 큰 것이 아니다. 정책 금융과 특권적 기회를 통해 성장했다. 물론 지원은 무조건적이지 않았다. 기업은 수출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내수 시장에서 보호받되 국제 경쟁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보호와 규율'이라는 이중 장치를 작동시켰다. 물론 정치적 부패와 기업의 정경유착, 무분별한 구제 금융도 있었다.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공 지원을 받는 기업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확고했다. 동남아시아 정부들 역시 기업에 혜택을 줬지만, 기술과 수출 성과보다는 정치적 충성도에 따라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한국의 국가 주도 성장 체제는 노동을 강제로 재편했다. 독립 노조를 탄압하고 임금을 억제했다. 기적은 기업가 정신뿐 아니라 노동자의 희생이라는 강압적인 토대 위에서 구축됐다. ◇한국의 이야기가 다시 쓰인 방식 한국의 성공이 주목받을 무렵, 그 원리에 대한 해석은 왜곡됐다. 1980년대 이후 시장 중심주의가 득세하면서 한국의 모델은 '수출 지향, 자유무역, 교육, 거시경제 안정'이라는 편안한 공식으로 포장됐다. 정부의 개입과 산업 정책이라는 본질은 거세됐다. 수출은 산업 혁신의 자금 조달과 규율 수단이었는데, 그저 '성장의 원인'으로만 해석됐다. 앨리스 앰스덴과 로버트 웨이드 등 비평가들은 정부가 단순히 시장 실패를 교정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할 수 없는 역량을 창출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해외 정책 실무 현장에서는 이런 알맹이는 빠지고 '개방'과 '외국인 투자'만 강조하는 얄팍한 처방이 힘을 얻었다. 개발도상국은 수출을 독려받았지만 정작 자국 기업을 육성할 조건은 갖추지 못했다. 외국인 투자를 무작정 유치했지만 현지 학습을 위한 장치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가치 사슬이 확산됐다. 개발 도상 국가들은 자국 산업을 통째로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됐다. 조립이나 특정 공정만 담당해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이는 빠른 진입을 가능하게 했지만, '생산 통제권'은 다국적 기업의 손으로 넘어갔다. ◇동남아시아는 다른 세계 경제에 진입했다 동남아시아는 1980년대 중반, 생산이 국경을 넘어 파편화되는 시기에 글로벌 제조업에 편입됐다. 일본 기업들이 저비용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면서 동남아시아는 조립 기지가 됐다. 수출은 늘었고 인프라는 개선됐다. 하지만 한국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전체 산업 시스템을 조율하는 국내 기업을 키웠지만, 동남아시아는 외국 기업이 짜놓은 판에 들어가 특정 공정을 수행하는 데 급급했다. 말레이시아는 선도적인 전자 기업을 끌어들였지만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자국 기업은 만들지 못했다. 태국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산업을 키웠지만 현대차 같은 자국 브랜드는 없었다. 인도네시아는 국영 기업을 앞세워 철강, 항공기 등 전략 산업을 시도했지만 정치적 비효율에 가로막혔다. 최근 니켈 전략을 통해 재기를 노리지만, 자본과 기술의 상당 부분은 중국 기업에 의존한다. 베트남은 가장 중요한 사례다. 삼성 등 글로벌 기업의 대규모 투자로 수출 구조가 바뀌었다. 하지만 제품 설계와 고부가가치 기술은 여전히 베트남 밖에서 통제된다. 빈그룹(Vingroup)과 빈패스트(VinFast)의 전기차 도전은 야심 차지만, 이미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독자적인 역량을 키워야 하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 역사적 시기가 다르다. 한국은 국내 기업을 보호한 뒤 국제 경쟁에 내보냈지만, 베트남은 외국 선도 기업이 지배하는 경기장에 이미 뛰어든 상태다. 다국적 기업은 국가보다 강하다. 생산 라인을 옮길 수 있는 그들에게 정부는 세금 혜택을 주며 매달린다. 한국 정부가 기업에 투자를 요구했다면, 동남아시아 정부는 기업의 눈치를 보며 지원을 제공한다. ◇한국의 성공이 치른 사회적 대가 한국의 경험을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산업화의 밑바닥에는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들은 대규모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했지만, 기업 위주의 이중 구조는 해체되지 않았다. 재벌은 여전히 경제를 지배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커졌다. 교육은 공정한 기회보다 계급 이동의 사다리를 선점하는 수단이 됐다. 성 불평등과 저출생 문제 역시 발전의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못한 시스템의 결과다. 이는 동남아시아에 보내는 경고다. 국가대표 기업을 키우는 것이 기술 학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동시에 거대 기업이 국가 위에 군림하며 기회를 독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가 여전히 배울 수 있는 것 한국의 과거를 똑같이 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음 질문만큼은 반드시 던져야 한다. -"누가 금융을 통제하는가? 어떤 기업이 지식을 축적하는가? 공공 지원의 대가는 무엇인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지 말고 '통제'하라. 단순한 투자 규모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엔지니어링, 연구 파트너십, 공급망 고도화 등 국내 역량이 얼마나 쌓이는지 프로젝트를 평가해야 한다. -국내 기업을 지원하되 성과를 요구하라. 지원은 무조건적 시혜가 아니다. 투자, 수출, 기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은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 -금융의 역할을 복원하라. 민간 금융이 외면하는 전략 산업에 공공 자금이 '인내하는 자본' 역할을 해야 한다. -유행하는 업종이 아닌 '역량'을 표적으로 삼으라. 반도체, 전기차 같은 간판업종에 매몰되지 말고, 이를 뒷받침할 정밀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소재 등 산업 전반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 -노동력을 산업 정책으로 다루라. 단순 조립공을 넘어 엔지니어와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경력을 설계해야 한다. 단체교섭과 사회적 보호는 발전을 마친 뒤의 보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산성을 위한 필수 동력이다. 동남아시아가 제2의 한국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생산 네트워크 내에서 단순한 하청 기지로 남는 낡은 모델은 넘어서야 한다. 핵심은 스스로 경제적 미래를 결정할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의 성장을 견인한 정부가 이룬 진짜 성취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한국 모델에서 동남아시아가 가장 배워야 할 감춰진 얼굴이기도 하다. *피에트로 마시나는 나폴리동양학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친다. 케임브리지대 클레어홀 종신 회원이다. '유럽 동아시아 연구 저널(European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EJEAS)'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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