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적 8개국의 갈라진 운명…왜 한국·대만·싱가포르·중국만 성공했나
2008 세계은행 성장위 선정 경제 기적 8개국 절반만 도약의 사다리, 나머지는 제자리 한국·대만·싱가포르·중국의 성공 비결 말레이·태국·인니·브라질의 정체 원인 -스티븐 브라이언 개발 경제 전문가 https://hiddenrules.substack.com/p/eight-miracles-grew-alike-why-did Eight Miracles Grew Alike. Why Did Only Four Transform? 2008년 세계은행 성장위원회는 전후 진정한 의미의 경제 기적 13개를 꼽았다. 그중 8개국을 비교하며 무엇이 운명을 갈랐는지 파헤쳐 보자. 1983년 말레이시아는 국민차 생산에 착수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주도한 프로톤은 2년 뒤 첫 모델을 내놨고 국가는 판매를 보장했다. 경쟁 수입차 관세는 수년에 걸쳐 300%까지 치솟았다. 든든한 장벽 뒤에서 프로톤은 말레이시아 내수 시장을 장악했다. 한국은 조금 일찍 같은 도박을 걸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1970년대 첫 자동차를 만든 현대자동차는 밖으로 내몰렸다. 포니를 캐나다에 팔고 1986년 엑셀을 미국에 수출했다. 한국 차를 사줄 이유도,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시장이었다. 판매는 부진했고 살아남으려면 품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두 자동차 회사가 차이를 증명한다. 현대차는 지구촌 거의 모든 시장에서 차를 파는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가 됐다. 프로톤은 단 한 번도 해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경쟁력을 잃고 2017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지분 절반을 중국 기업에 넘겼다. 같은 시대, 같은 산업, 같은 국가적 야망이었다. 한 기업은 세계와 맞서야 했고 다른 기업은 세계로부터 철저히 보호받았다. ◇같은 출발선, 다른 한계점 두 자동차 회사는 8개국 전체를 관통하는 분기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8개국은 비슷한 소득 수준에서 출발해 같은 기간 똑같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 갈라졌다. 4개국은 계속 올라갔고 4개국은 멈춰 섰다. 8개국 모두 눈부시게 성장하며 주변 경쟁국을 앞질렀다. 따라서 성장 자체가 운명을 가르지는 않았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은 매우 드문 성취를 이뤘다. 기술 최전선에 다가서며 끊임없이 혁신했다. 기존 산업이 성숙해지면 세계를 제패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고 고도성장기가 끝난 뒤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반면 나머지 4개국은 맹렬히 성장하다 도중에 길을 잃었다. 주목할 점은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이 '도약'이다. 기존 발전 경제 이론은 바로 이 점을 놓치고 있다. 한국은 1960년 미국 1인당 소득의 11% 수준에서 출발해 2022년 51%에 도달했다. 싱가포르는 23%에서 115%로, 대만은 9%에서 57%로 뛰었다. 세 나라 모두 기술 최전선 근처에 안착했고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중국은 4개국 중 가장 분류하기 까다롭다. 1960년 미국 소득의 7%에서 2022년 30%로 올랐고 여전히 격차를 좁히고 있다. 다른 국가보다 경제 전환을 늦게 시작했고 초기 성과도 미약했지만 최근 들어 확실히 치고 나갔다.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이 패턴을 가장 극한까지 시험해 볼 핵심 사례다. 나머지 4개국도 과거와 비교해 눈부시게 성장하며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 말레이시아는 미국 소득의 11%에서 32%로, 태국은 5%에서 18%로, 인도네시아는 4%에서 8%로 올랐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전에 지독한 관성에 빠졌다. 브라질은 1970년대까지 맹렬히 성장하다 멈춰 섰다. 1960년 미국 소득의 22%에서 60년이 지난 오늘날 23%에 머물러 있는 비운의 기적이다. 도약한 4개국이 단순히 같은 사다리를 더 높이 올라간 것이 아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이라는 사다리를 계속 만들어낸 반면 나머지 국가는 오르던 사다리 꼭대기에 다다르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약한 4개국이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혀 멈춘 것도 아니다. 한국이 51%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릴 때, 말레이시아는 바로 그 소득 구간에서 동력을 잃었다. 두 나라는 같은 길을 달렸지만 오직 한 나라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자본 투자가 정답은 아니다 주류 경제학은 외국인 투자를 단순한 자본 이상의 가치로 평가한다. 다국적 기업이 기술, 경영 기법, 글로벌 시장 진출 경로를 닦아주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유입된 외국 자본의 양을 따져보면 이 서사는 철저히 무너진다. 한국과 대만은 경제 전환기 내내 외국인 직접 투자를 거의 받지 않았고 대부분 기간 GDP의 1%를 밑돌았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4~5%, 태국은 2~4%를 유치했다. 태국은 이 자본이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2000년대 태국은 도요타, 혼다 등 외국 브랜드 차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조립 허브가 됐다. 하지만 현대차에 필적할 자국 자동차 제조사는 단 한 곳도 키워내지 못했다. 성장이 멈춘 두 나라가 도약한 국가들보다 외국 자본에 훨씬 개방적이었다. 높은 투자율은 후발국의 전형적인 성장 엔진으로 꼽힌다.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들이는 자본이 많을수록 생산량이 늘어야 정상이며, 수십 년 동안 동아시아의 눈부신 성장은 이 엄청난 투자 덕분이라 칭송받았다. 하지만 투자율로도 운명을 가를 수 없다. 1997년 이전 태국의 고정 투자 비율은 GDP의 42%에 달했다. 한국은 단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수치다. 물론 태국의 투자 상당 부분은 생산 시설이 아닌 부동산과 투기성 금융으로 흘러갔다. 말레이시아도 44%를 찍었고 두 나라 모두 한국만큼 저축을 많이 했다. 도시화는 생산성이 낮은 농업에서 노동자를 끌어내 생산성 향상이 집중된 도시로 옮기는 과정이다. 여기서도 패턴은 완전히 뒤집힌다. 도약한 중국은 8개국 중 도시화율이 가장 낮았고 성장이 멈춘 브라질은 가장 높았다. 교과서의 예측과 정반대다. 따라서 도시화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주류 기준표로 채점해 보면 도약한 국가는 투자와 자본 축적에서 멈춘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처졌지만 결국 경제 구조를 혁신해 냈다. 이 수치는 한 경제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본을 쌓았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과 앨윈 영은 동아시아의 기적이 영감(혁신)이 아닌 땀(요소 투입)에 의존해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8개국 사례는 이 주장을 더 멀리 밀어붙인다. 가장 땀을 많이 흘리며 자본을 쌓아 올린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도약하기는커녕 가장 먼저 멈춰 섰다. 자본 축적의 양은 길을 잃은 기적과 도약한 기적을 갈라놓지 못한다. ◇국가나 시장이 만든 차이도 아니다 개발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자원 배분을 지시하는 '산업 정책'을 끌어온다. 같은 방식으로 시험해 보면 이 가설이야말로 두 그룹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나 브라질처럼 관세 장벽 뒤에서 국가 대표 기업을 키운 적이 없다. 글로벌 기업에 경제를 개방해 밖에서 기술과 역량을 들여오게 뒀다. 동시에 항만, 항공사, 은행 등 핵심 기업 소유권은 국가가 꽉 쥐고 있었다. 한국은 정반대였다. 관치 금융, 철저히 보호된 내수 시장, 국가가 밀어주는 재벌, 매달 수출 실적을 낱낱이 점검하는 회의. 그럼에도 두 나라 모두 완벽하게 도약했다. 말레이시아는 300%에 달하는 관세 장벽 아래서 국민차 프로톤 프로젝트, 중화학 공업 육성,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을 펼쳤다. 브라질은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Embraer)를 키웠고 베피엑스(BEFIEX) 수출 지원 제도를 운영하며 수십 년 동안 자국 산업을 든든하게 보호했다. 두 나라는 멈춰 섰다. 적극적인 산업 정책이 도약을 이끌었다면 대규모 정책을 펼친 말레이시아와 브라질이 도약했어야 한다. 반대로 산업 정책이 없어야 도약한다면 지시 경제를 운영한 한국은 멈춰 섰어야 한다. 현실은 둘 다 아니었다. 관세, 국영 기업, 관치 금융 같은 수단은 성장이 멈춘 그룹에서 최소한 비슷하게 활용됐거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선을 완전히 빗나갔다. 관세율 자체는 엉성한 잣대일 뿐이다. 관세에 어떤 조건이 따라붙었는지, 즉 기업이 보호를 받기 위해 무엇을 증명해야 했는지가 진짜 중요한 차이다. 산업 정책 자체도 마찬가지다. 관치 금융이나 생산 목표의 유무가 아니라, 정부가 슬쩍 기준을 낮춰줄 수 없는 '조건부 지원'이 있었느냐가 핵심이다. 이 결과는 30년 묵은 논쟁을 가로지른다. 앨리스 앰스덴, 로버트 웨이드, 조 스터드웰 같은 발전 국가 학자들은 유망 산업을 고르고 자금을 쏟아부은 적극적인 국가를 칭송한다. 반면 자유 시장 학파는 개방성과 자유로운 가격 결정을 최고로 친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양극단에 서 있지만 둘 다 기술 최전선에 도달했다. 이 논쟁의 축은 8개국을 나누는 진짜 축이 아니다. 정치적 개방성도 답이 아니다. 도약한 싱가포르와 중국은 철저히 정치를 통제하고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했다. 반면 성장이 멈춘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1985년과 1998년 민주화를 이뤘음에도 경제적 관성에 갇혔다. 승자 그룹에 독재가 있고 패자 그룹에 민주주의가 섞여 있다. 무엇이 도약을 이끌었든 정치의 개방성은 아니었다. 유입된 자본의 양, 정부의 통제 방식, 정치적 개방성 중 어느 것도 명확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전혀 다른 무언가가 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무엇이 갈라놓았나 지금까지 지표는 '얼마나 많이' 주어졌는가만 물었다. 자본, 교육, 지원이 얼마나 투입됐느냐는 거다. 부자 나라와의 소득 격차를 좁히는 수렴 성장은 두 그룹 모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격차를 좁히는 것과 기술 최전선에 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정작 중요한 질문, 즉 한 경제가 '어떤 역량'을 갖췄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 글에서 역량이란 해외 모기업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려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는 '자체 역량'이다. 이제 세 가지 지표를 통해 이 역량을 측정해보자. 겉으로 드러나는 산출물의 다양성부터 근본적인 밑바탕까지 파고들자. 경제 생산물이 얼마나 다각화되었는지, 최고 난도 기술 분야에서 자국 기업을 키워냈는지, 경제 규모 대비 자체 발명이 얼마나 활발한지 따져보자. 회계 장부에 집착하는 방식에 맞서 '어떤 역량이 구축되었는가'를 묻는 논쟁의 핵심이다. 다양화된 경제는 단순한 양적 팽창이 아닌 진짜 구조 전환을 보여주는 신호다. 기업들이 기존 제품을 더 많이 찍어내는 것을 넘어 훨씬 정교하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낼 만큼 복잡한 역량을 쌓아 올렸다는 뜻이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넘어가는 결정적 징표다. 추격 성장은 똑같은 제품에 자본과 노동을 더 쏟아붓는 좁은 우물 안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버티려면 쉼 없이 더 어렵고 새로운 제품을 찾아내야 하며 이는 수출 바구니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현대차의 발전 궤적은 기업 규모에서 이 전환을 그대로 보여준다. 1970년대 라이선스를 빌려와 조립하던 소형차에서 출발해 지금은 업계에서 가장 복잡한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국가 수출 바구니도 진화했다. 1960년대 노동 집약적인 단순 제품이 선박, 기계, 전자로 자리를 내줬고 난도는 치솟았다. 경제 복잡성 지수(ECI)는 국가 수출품이 고도의 역량을 요구하는지 측정한다. 하버드 성장 연구소 순위에 따르면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2012년 이후 줄곧 세계 상위 10위권을 지켰고 중국은 17위에서 10위로 뛰어올랐다. 반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라질은 단 한 번도 진입하지 못했다. 2012년부터 2024년까지 이 4개국은 항상 20위권 초반에서 60위권 후반을 맴돌았고 도약한 국가들과 최소 12계단 이상 벌어져 있었다. 성장이 멈춘 4개국 중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20위권 후반에서 30위권 초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공인된 성장 기적이라는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은 하위권에 가깝다. 복잡성 지수는 누가 생산 역량을 소유했는지가 아니라 경제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만 따진다. 이 첫 번째 지표에서도 격차는 분명하지만, 아직은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차원이 다른 격차 도약한 4개국은 나머지 국가가 절대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넘었다. 바로 자체적으로 소유하고 발명을 낳는 역량이다. 이를 '역량 격차'라 부르자. 최고 난도 기술 분야에서 세계와 경쟁하는 토종 기업의 유무는 수출 통계보다 날카로운 잣대다. 자체 역량을 들고 들어온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만 해도 수출은 다각화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을 직접 소유했다는 것은 해외 모기업이 언제든 빼갈 수 있는 껍데기 공장이 아니라 경제 내부에 진짜 역량이 살아 숨 쉰다는 뜻이다. 차이가 단순 추격과 진짜 도약을 가른다. 추격 성장은 수입된 역량으로도 충분하다. 기술을 빌리고 조립 라인을 깐다. 국가는 발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수출품만 다양해진다. 하지만 최전선 너머로 성장을 이어가려면 새로운 역량을 창조해 내는 기업이 필수적이며 가장 어려운 산업에서 토종 기업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을 보면 성장이 멈춘 4개국에는 첨단 기술 토종 기업이 전무하다. 이들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은 페르타미나, 페트로나스, PTT, 페트로브라스 같은 국영 석유 및 가스 회사들뿐이다. 반면 도약한 4개국은 칩 분야의 삼성과 SK하이닉스, 파운드리의 TSMC, 자동차의 현대, 전자와 전기차의 화웨이와 BYD를 링 위에 올렸다. 한쪽은 국영 석유회사를, 다른 한쪽은 삼성과 TSMC, 현대와 화웨이를 링에 올렸다. 정부와 맺은 거래의 질은 기업의 뼈대에 새겨진다. 성장이 멈춘 4개국의 선두 기업들은 철저히 보호받고 폐쇄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온실 속 화초다. 자원 수출이나 철통같이 방어된 내수 시장에서 돈을 긁어모아 거대해지고 권력과 결탁해 엄청난 이윤을 냈지만, 밖으로 나가 경쟁자를 이기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도약한 국가들은 정반대였다. 피 튀기는 수출 시장에서 살아남은 독종 기업을 키워냈다. 진정한 격차는 기업의 이름값이 아니라 기업을 길러낸 거래의 질적 차이에 있다. 특허는 격차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복잡한 물건을 찍어내는지 묻지 않고, 직접 발명하는지를 따진다. 라이선스를 빌리거나 조립하거나 베낀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는 보호받는 권리다. 추격 성장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들여와 입맛에 맞게 고치고 역설계하는 방식에 의존하므로 자체 발명은 거의 필요 없다. 하지만 최전선을 넘어서면 빌려올 기술이 없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1990년 대만은 인구 100만 명당 36건, 한국은 5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성장이 멈춘 국가 중 최고 기록인 브라질의 0.27건보다 무려 20배에서 100배가 넘는 수치였다. 2000년에 이르러 대만은 260건, 한국은 74건, 싱가포르는 60건으로 폭증했다. 4번째 도약 국가인 중국은 그해 0.13건으로 말레이시아와 브라질에 뒤처져 있었다. 훗날 버리고 떠날 그룹과 구분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3개국은 치고 나갔지만 중국은 아직 선을 넘지 못했다. 2020년 중국의 특허 출원율은 18건에 도달했다. 수백 건을 쏟아내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와는 자릿수가 달랐지만 성장이 멈춘 4개국 중 최고인 말레이시아(3건 미만)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중국은 다른 3개국이 넘었던 선을 훌쩍 넘했다. 오랫동안 3대 4로 유지되던 지형이 최근 들어서야 완벽한 4대 4로 갈라졌다. 가진 자원의 차이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자국민이 직접 발명에 뛰어드느냐의 차이다. 도약한 4개국 중 3개국은 비교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확고한 차이를 벌려놓고 있었다. 다각화가 정도의 차이라면, 기업 소유권과 자체 발명은 본질적 차이다. 성장이 멈춘 4개국이 영원히 좁히지 못한 뼈아픈 역량 격차다. 이것이 서두에서 던졌던 최전선 돌파의 진짜 측정값이다. 4개국이 어디에 도달했는지는 말해주지만 무엇이 이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차이를 설명할 정답은 다각화, 토종 기업, 발명이라는 세 가지 결과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하고 타당한 원인이어야 한다. ◇4개국이 공유한 하나의 원칙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관된 요소가 나타난다. 특정 정책이 아니다. 핵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했던 생존 방식의 변화다. 기업들은 핑계를 대고 버티면 봐주는 온정적인 보호자에 기대는 대신 냉혹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단 변화는 격차가 벌어지기 전에 일어났어야 한다. -1950년대 후반 대만은 석유도 광물도 없었고 부실기업을 끌어안을 여력도 없었다. 심각하게 고평가된 환율을 유지해 수출 기업들이 벌어들인 피 같은 수익을 말려 죽이고 있었다. 1958년 개혁파는 환율 문제부터 수술했다.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환율을 통합했으며, 외환 배급제를 폐지했다. 결과는 기업 이윤 구조의 완전한 재편이었다. 낡은 환율 보호막 아래 기생하던 기업들은 방패를 잃었고,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기업들은 무기를 손에 쥐게 됐다. 경제 전체가 던지는 보상의 기준이 단 하나로 좁혀졌다. "외국인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물건을 만들어라." -한국은 정반대 방식으로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국 대통령은 1965년부터 매월 수출 회의를 주재하며 기업별 수출 목표를 소름 끼치게 챙겼다. 당겨 쓸 수 있는 대출 규모는 수출 실적과 연동됐고 은행들은 수출 기업에만 압도적으로 싼 이자로 돈을 밀어줬다. 10년 동안 수출 목표를 채우지 못한 기업은 온갖 특혜 금융이 쏟아지는 종합 무역 상사 지정을 가차 없이 박탈당했다. 국가의 지원은 공짜가 아니라 실적을 내놓아야만 주어지는 가혹한 조건이었다. 판돈이 커지면서 규율은 거칠어졌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육성기에는 사전적인 엄격한 조건보다 사후적인 기업 강제 통폐합에 더 의존했고 부실기업 처리가 깔끔하게 진행됐는지를 판단했다. -싱가포르는 세 번째 길을 택했다. 무역 도시 국가는 애초에 뜯어고칠 농업 기반이나 거대한 내수 보호 시장이 없었다. 싱가포르는 기업에 특정 조건을 강요하지도, 걷어낼 보호 장벽도 없었다. 자유 무역항에 가까운 경제를 굴리며 공산품 관세는 0%에 수렴했다. 대표 기업들은 출발선부터 수입품과 외국 경쟁자들의 공세에 노출됐다. 국가가 항만, 국영 항공사, 국내 은행 등에 지분을 보유하긴 했지만 상업 투자 회사인 테마섹(Temasek)을 통해 관리했다. 테마섹은 시장 수익률을 요구했을 뿐 경쟁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온실 역할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싱가포르가 쥔 무기는 '비용 통제'였다. 1968년 제정된 법안은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고 임금 결정권을 국가에 쥐여줬다. 수출 기반을 다지는 동안 싱가포르 노동 비용은 한국, 대만, 홍콩보다 낮게 유지됐다. 이후 1979년부터 3년간 실시된 '임금 시정 정책'은 노동 집약적인 일자리를 몰아내기 위해 임금을 대폭 끌어올린 처방이었다. 정작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인상률은 연 3% 남짓으로 얌전한 수준에 머물렀다. 국가는 어떤 수출 목표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기업들은 관료가 입김을 불어넣을 수 없는 해외 바이어들의 냉혹한 평가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억지로 수출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국가가 함부로 고쳐 쓸 수 없는 평가서 앞에 기업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이 과정을 늦게, 천천히, 불균등하게 밟아나갔다. 1978년 개혁 이후에도 낡은 국영 부문은 헐값 대출과 원자재를 보장받으며 푹신한 보호막 안에 머물렀다. 대신 전혀 다른 곳에 날카로운 구멍이 뚫렸다. 향진기업(농촌 지역의 민영 기업)들은 국가의 계획 경제 틀을 완전히 벗어나 움직였다. 관료가 아니라 시장 바이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1980년부터 세워진 경제 특구는 기업들을 외국 기업과 합작하게 만들어 피 말리는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기간 중국 전역의 관세는 여전히 높았다. 거대한 중국 전체가 아니라 이 좁은 구멍을 통해서 진짜 경쟁이 불어닥친 것이다. ------------------------------ 대만의 메커니즘은 순수한 시장에 가까웠다. 환율 왜곡만 걷어내고 국제 가격이 직접 기업들의 생사를 가르도록 내버려 뒀다. 한국은 순수한 국가 통제에 가까웠다. 정부가 직접 기업을 감시하고 포상했지만 기준은 철저히 해외 실적이었다. 싱가포르와 중국은 그 중간이었다. 국가가 임금 바닥을 들어 올리거나 단계적으로 족쇄를 풀어주며 기업들을 시험대 위로 밀어 올렸다. 어느 쪽이든 기업은 국가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냉혹한 테스트를 마주해야 했다. 특정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기업과 맺은 '거래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이 거래는 두 가지 특징을 가졌다. 첫째, 흥정해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약속이었다. 둘째, 권력에 줄을 댄 소수가 아니라 조건을 충족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였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국가 통제력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외국 바이어의 선택, 무자비한 국제 가격, 경쟁사의 신제품. 정부가 발버둥 쳐도 결코 조작할 수 없는 진실이다. 자국 기업을 냉혹한 기준에 묶어버리는 것은 국가의 선택이지만, 기준 자체는 고쳐 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도약한 4개국이 공유한 공통점이다. 차이를 만든 것은 정부가 기업을 얼마나 쥐어짰느냐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기업이 정부를 붙잡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느냐다. 한국 정부는 역사상 그 어떤 국가보다 기업들을 쥐어짰다. 대출 목줄을 쥐고 매달 실적표를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도약했다. 실패한 기업이 안방에서 읍소할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사여탈권은 낯선 외국 바이어의 손에 있었고 바이어는 구차한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관료는 구슬려 목표치를 낮출 수 있지만, 외국 바이어는 결코 구슬릴 수 없다. 애초에 읍소조차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4개국의 성공 사례에서 도출된 가설일 뿐 반대편 사례로 검증되지 않았다. 스스로 점수판을 쥐고 흔들며 커트라인을 낮춰주는 느슨한 정부를 가지고도 도약한 다섯 번째 국가가 등장한다면, 이 가설은 당장 폐기해야 마땅하다. 4개국이 보여준 두 번째 차이는 도구 너머에 있었다. 거래의 문이 얼마나 열려 있었는가다. 싱가포르는 조건을 맞추는 누구에게나 문을 열었다. 반면 한국은 소수의 대표 기업들에게 특혜를 몰아줬고 그다음에야 그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였다. 흔히 착각하고 베끼려 드는 것이 바로 이 '도구'다. 한국의 관치 금융을 탐내거나 싱가포르 개방 정책을 흉내 내려는 시도는, 똑같은 도구를 만지작거리는 꼴이다. 이것이 후발 주자의 핵심 엔진이다. 최전선에 몸을 노출하면 온실 속에 숨어 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끌어올려진다. 여기서 말하는 무자비한 경쟁의 시험대는 알렉산더 거센크론이 말한 후발 주자의 이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이 대목이 뻔한 수출 정책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정부는 수출 목표를 세우고 신용 대출을 꽂아주며 시스템을 굴릴 수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 여부를 대충 심사하고 실패한 기업을 눈감아준다면 타협일 뿐이다. 성장이 멈춘 4개국에서 이 냉혹한 시험대를 찾아보자. 모든 사례에서 빠져 있다. 국가마다 빠져 있는 구체적인 이유도 다르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보호자의 유무 성장이 멈춘 4개국에서 외부 심판관의 부재가 명확히 확인되어야 이 분석은 힘을 얻는다. 성장이 멈춘 4개국에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보호자가 있었다. -1980년 시작된 말레이시아 하이콤(HICOM) 중화학 공업 프로그램은 프로톤에 막대한 신용과 보호된 내수 시장을 안겨줬다. 하지만 반드시 통과해야 할 냉혹한 조건은 달지 않았다. 프로톤은 관세 장벽과 독점 면허를 쥐고 흔들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의미 있는 해외 수출 실적은 단 하나도 내지 못했다. -태국의 투자청(BOI)은 가벼운 방식을 택했다. 세금 면제와 수입 관세 면제 혜택 증명서를 발급해 주면 다시는 실적을 캐묻지 않았다. 수백 장의 특혜 증명서가 발급됐지만 실적 부진으로 이탈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느슨한 패턴은 최상위 기업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태국 최대 민간 재벌 차른폭판(CP)은 100년 동안 아무런 위협 없이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남들이 기술을 빌려 갈 자체 혁신 기업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서류상으로는 한국과 비슷한 시험대를 굴렸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피아트(Fiat)가 브라질 내수 시장에 발을 들이려면 10년간 4억 달러(약 5800억원)라는 정부의 빡빡한 수출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하지만 1973년 계약은 피아트가 기존 트랙터와 트럭 수출 실적을 합산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새로 지은 자동차 공장 자체는 목표치를 채울 필요가 없었다. 숫자는 존재했지만 진짜 규율은 증발해 버렸다. -인도네시아 사례는 누군가와 경쟁할 생각조차 없었다. 수하르토의 아들은 막강한 혜택을 등에 업고 공식 자동차 제조사라는 독점 지위를 꿰찼다. 회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완성차(기아 세피아)를 들여와 껍데기 상표만 갈아 끼운 뒤 인도네시아 토종 국민차로 둔갑시켜 팔아치웠다. 여기서도 공통점은 심판관의 부재였다.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것은 언제든 구워삶을 수 있는 관료, 인허가 위원회, 끈끈한 족벌 인맥이었다. 타협 가능한 보호자에 대한 노출이다. 기업이 불편해지면 고쳐 쓰고 무시할 수 있는 허울뿐인 시험대다. 이 4개국의 선두 기업들은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았고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당장 물건을 사지 않으면 떠나버릴 차가운 바이어 앞에서 애원할 필요가 없었다. 타협 가능한 보호자 덕에 꼭대기에 오른 기업은 방패막이를 유지하는 데 사활을 건다. 덩치가 커질수록 거기에 쏟아붓는 돈도 늘어난다. 도약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4개국 모두 철통같이 방어할 수 있는 고지까지 기어올랐다. 그리고 선을 넘어 나아가는 대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굳히기에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천장이 아니었다. 한국이 치고 올라간 바로 그 자리에서 멈췄다. 더 이상 올라갈 이유가 없는 아늑한 꼭대기였다. ◇승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선을 넘은 반대편, 도약한 4개국에서 생존은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삼성은 아무런 빚도 호의도 없는 세계 시장에 반도체를 팔아치우는 데 명운을 걸었다. 정부조차 결과를 조작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냉혹한 심판관이었다. 삼성은 오직 외국 바이어들이 물건을 선택해 주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런 기업은 안에서 인공호흡기를 달아줘도 살릴 수 없다. 언제든 다른 경쟁자에게 떠나버릴 수 있는 외부의 선택을 받아내야만 생존한다. 외국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표 1등 기업조차 처참하게 망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승자조차 몰락할 수 있다. 도약한 국가들은 기꺼이 부도를 용인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거대 재벌 대우를 공중분해 시켰고 기아자동차의 부도를 용인했다. 대만은 애초에 거대 재벌을 키우지 않았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피 터지게 싸우는 생태계였고 어떤 기업도 덩치를 무기로 몰락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의 국가대표 기업들은 잔혹한 내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지고 산산조각 난다. 이것이 경제 다각화, 첨단 토종 기업 육성, 폭발적인 특허 출원을 만들어낸 진짜 동력이다. 외부 심판관 앞에 발가벗겨진 기업은 발명하고 사업을 다각화할 수밖에 없다. 적당히 구슬릴 수 있는 보호자 밑에서 자란 기업은 가질 수 없는 절박함이다. 무자비한 '도태와 누적'의 결과다. 외부 시험대는 기준에 못 미치는 기업을 쓸어버리고 살아남은 자에게 뼈를 깎는 적응을 강요한다. 역량은 뼈를 깎는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 길러내는 것이다. 살아남은 기업은 더 많은 돈과 경험, 위상을 손에 쥔다. 온실 속 화초는 아무것도 누적하지 못한다. 아주 작았던 차이가 한 세대 동안 누적되면서 아득한 격차를 만들어냈다. 도약한 4개국에는 있고 멈춘 4개국에는 없었던 것은 물어뜯는 이빨, 즉 실패했을 때 살점이 뜯겨나가는 진짜 대가였다. 말레이시아의 수출 목표는 휴지조각이었다. 태국의 투자 증명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한국은 처음부터 물어뜯는 이빨을 깊숙이 박아 넣었고 삼성은 이빨을 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책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역량을 만들어낼 수 없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량은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다. 정부는 고통스러운 조건은 세팅할 수 있지만, 역량 자체를 떠먹여 줄 수는 없다. 이빨이 역량이 축적될 가혹한 환경을 만들고 기업이 그 역량을 스스로 쌓아 올릴 뿐이다. 말레이시아가 한국의 시스템을 껍데기만 베껴가고 진짜 역량은 단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 이유다. ◇규칙 준수 아닌 '수정 불가'가 핵심 투자와 외국 자본, 저축, 도시화, 정치적 개방성을 들이밀어 본 결과 오직 단 하나의 진실만 살아남았다. 발전 국가 학파와 시장 친화 학파 간 논쟁조차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다. 정부가 지시했느냐 시장이 결정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부실기업이 자국 정부에 동정을 구할 수 있었느냐, 장관조차 손댈 수 없는 외부 기준을 통과해야 했느냐의 문제다. 한국은 기업 운명을 통제하는 모든 것을 쥐고 흔들었지만, 해외 시장 평가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시장 노출, 심판관, 시험대, 물어뜯는 이빨. 이 모든 것은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이름표다. 이 차이는 거시 데이터만 훑어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각 국가의 깊숙한 기록을 파헤쳐야 드러난다. 하지만 결과와 일치한다고 해서 무조건 원인인 것은 아니다. 가장 선명한 기준점을 찾았지만 확정된 원인이 아니다. 두 가지 무거운 질문이 남는다. 이 '시장 노출'이라는 기준이 국가 역량, 1997년 외환위기 충격, 시장 접근성, 환율 관리라는 강력한 경쟁 요인과 맞붙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대체 왜 어떤 정부는 끔찍한 시험대 위에 기업을 밀어 넣은 반면, 어떤 정부는 온실 속에 고이 모셔뒀을까. 핵심은 약속이 얼마나 잘 지켜졌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누구를 만족시켜야 했느냐'다. 말레이시아는 프로톤과의 약속을 30년 동안 지켰고 진짜 경쟁으로 내몰지 않았다. 기업이 넘어야 할 기준선을 누가 정했는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외부 바이어였는가, 구슬리면 골대를 밀어주는 정부 관료였는가. 이 글은 국가가 기준을 집행할 의지가 있었느냐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실패한 기업이 과연 그 기준에서 빠져나갈 틈이 1%라도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규칙을 언제든 고쳐 쓸 수 있었다. 8개국을 가른 것은 점수판을 어느 한 기업의 손이 절대 닿지 않는 곳에 치워뒀는지 여부다. 어떤 정부가 일관된 산업 정책을 펼쳤다며 자화자찬할 때 물어야 할 것은 규칙이 잘 지켜졌는지가 아니다. 규칙을 누가 썼는지, 그리고 그 주체가 기업이 흔들릴 때 규칙을 뜯어고칠 수 있었는지다. 정부 스스로 언제든 고쳐 쓸 수 있는 거래는 결코 시험대가 아니다. 달콤한 약속일 뿐이다. *스티븐 브라이언은 영국 사회보장자문위원회(SSAC) 위원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에티오피아, 말라위 등 세계 20여개국 정부의 거버넌스와 국가 개혁 전략을 자문했다. 영국 고용연금부(DWP) 시절에는 영국의 현대 복지 제도를 개편한 유니버설 크레딧의 청사진이 된 저서 '다이내믹 베네핏(Dynamic Benefits)'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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